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목적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일본군과 일본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고 전시 성폭력을 근절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피해자를 두 번 다시 만들지 말라”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시 성폭력이 범죄로서 처벌받고 책임을 져야 할 국가가 사죄와 배상을 하는 시스템과 전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에 한국에서는 한국 정부의 전시 성폭력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이러한 운동은 일본 및 전 세계 시민들과 연대하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은 한국의 ‘반(反)일본’ 정치수단이 아니라 국경을 넘은 ‘반(反)성폭력’, ‘반(反)식민지주의’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피해 여성을 지원해온 정대협
한국에는 다양한 관련 운동단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안부’ 피해자들이 함께 생활하는 <나눔의 집>1은 독자적인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산, 대구, 통영·거제, 마산·창원·진해 등지의 단체들도 그 지역에 사는 피해자를 지원하면서 자료관을 건설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 단체는 서로 연대하면서, 한편으로는 각자의 운동을 주체적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여기서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의 운동을 중점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정대협은 한국 최초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단체로 결성되었으며 국내외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한국의 관련 운동은 모두 정대협이 한다고 생각하거나,2 무슨 일만 있으면 ‘반일단체라는 낙인을 찍기도 합니다.3
정대협은 1990년 11월 16일, 한국의 37개 여성단체의 연합체로 결성되었습니다. 민주화운동의 경험과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1980년대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한국의 여성운동이 그 배경에 있었습니다.
정대협이라는 버팀목이 생기자 피해자들은 ‘위안부’였음을 밝히기 시작했습니다.4(12-1 참조) 이후 피해자 지원이 정대협 활동의 중심이 되어갔습니다. 정대협은 정기적으로 전국의 피해자의 집을 방문하여 생활과 건강상태를 직접 파악하고 피해 여성들의 공동주택인 쉼터 <평화의 우리 집>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에게 해방 후 반세기 동안이나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방치해온 책임을 추궁하고 지원정책을 강구하도록 촉구하여, 지금은 피해자들이 매월 지급되는 생활지원금과 무료의료제공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보장정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5
평화운동가가 된 할머니들
본인이 ‘위안부’였음을 밝힌 피해 여성들 중에는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칼럼 「<소녀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참조)에 참가하거나,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증언을 하는 등,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에 스스로 참여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러한 활동은 피해자 스스로에게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정대협은 피해자들을 존경과 친근함을 담아 ‘할머니’라고 부릅니다.
그러한 할머니들 가운데 <나비 기금>이 설립되는 계기를 마련한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가 계십니다.6 두 분은 정대협과 함께 일본과 미국, 유럽 각지를 돌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운동을하면서, 그리고 수요집회를 찾아오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한국의 미군 기지촌에서 성을 수탈당한 여성들을 만나면서, 지금도 군대의 성폭력에 희생되는 여성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 정부한테 배상금을 받으면 지금도 전시하에서 성폭력 피해를 받고 있는 여성들에게 모두 주고 싶다.
두 분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정대협은 2012년 3월 8일, 전시하 성폭력 피해를 입은 각국의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한 <나비 기금>을 만들었습니다.
<나비 기금>은 2012년 4월부터 분쟁 중인 콩고의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지원활동을 시작했고, 1년 후인 2013년 3월부터는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의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과 그 아이들을 위한 지원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도록 촉구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7
정대협의 <나비 기금>이 베트남 피해 여성의 지원 활동을 시작했을 때 어디에 어떤 피해자들이 얼마나 있는지 이미 어느 정도 파악이 되어있었습니다. 윤정옥 정대협 초대 공동대표가 2002년에 대표직에서 물러나자마자 ‘한국·베트남시민연대’를 조직해서 한국군의 성폭력 피해를 입은 베트남 여성들의 조사와 지원 활동을 현지에서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비 기금>은 이러한 활동을 계승하여 베트남 지원 활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나비 기금>의 활동이 베트남에 서서히 알려지자, 더 많은 피해자들이 본인의 피해 사실을 밝히게 되었습니다.8
전시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정대협의 활동
정대협은 사반 세기에 걸쳐 활동해 오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지금도 계속되는 여성에 대한 전시하 성폭력 문제로 뚜렷이 자리매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여성의 성을 수탈하는 국가의 책임을 일본에게만이 아니라 한국 정부를 비롯한 모든 책임 있는 국가에게 묻고 있습니다. 정대협은 ‘기지촌여성인권연대’9활동에 결성(2012) 초기부터 참여하고 있고 2014년에 시작된 미군기지촌 위안부 소송도 지원하고 있습니다.10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이러한 정대협의 운동의 키워드를 ‘연대’와 ‘과정’이라고 표현합니다.11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연대를 통해 배우고 확산하고 본인들의 문제를 알리면서 동시에 타인의 문제를 스스로의 문제로 생각하고 연대한다, 정대협은 항상 이러한 ‘과정’ 중에 있다고.
운동은 ‘사람’이 만듭니다. 사람은 경험하고 배우고 변화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만드는 운동도 스스로 변화합니다. 특히 피해자들과 함께 걸어온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은 피해자와 지원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같이 변화하고 또 운동도 변하는, 이러한 과정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변화 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피해자 지원과 피해자가 원하는 해결이 운동의 중심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하게 하도록 한국 정부에 촉구한 것입니다. 이 운동은 앞서 말했듯, 뚜렷한 이유도 없이 단지 일본에 반대하기 위한 운동이 아닙니다. 피해자들의 요구를 실현하고, 나아가 전시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여성인권운동이자 평화운동입니다.
- 1992년 한국 불교단체 등의 발의로 건립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공동생활 터. 1998년에는 부지 내에 역사관을 개관하여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 등도 전시하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역사와 기억을 전하는 장소가 되었다.
- 예를 들어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출판 금지 및 민형사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아홉 명의 피해자인데, 박유하가 “지원단체가 내게 소송을 걸었다”라고 표현하는 바람에 정대협이 소송을 제기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대협이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라는 사실 무근의 소문까지 돌았다. 이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독자적인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나눔의 집이 이 소문을 들으면 대단히 기분 나쁘지 않겠느냐”라고 답했다.(2015년 4월 23일 일본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심포지엄에서)
- 여기서는,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일본에 대해 듣기 싫은 말을 하면 바로 ‘반일’이라는 낙인을 찍고 그 사람의 의견을 무시 또는 폄훼하거나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피판하고자 한다. ‘반일’이라고 여겨지는 발언 및 행동의 내용은 대부분 일본의 제국주의, 식민지주의, 군국주의, 파시즘, 역사적 책임의 부정과 같은 문제에 대한 비판이며, 이러한 비판의 내용과 역사적 배경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공개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 사실을 밝힌 것을 계기로, 1991년 말부터 1992년에 걸쳐 많은 피해자들이 신고를 했다. 그 후 신고 수는 계속 증가하여 238명으로 늘었고, 그 중 2016년 3월 현재 생존자는 44명이다.
- 1993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이 제정되어 매달 생활지원금이 지급되게 되었다. 이 법은 2004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어 한국정부는 피해자 개인에게 한 달에 98만 2천원을 지원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근거한 생활비 지급, 의료비 지급, 임대주택 우선입주, 간병인 비용지원 등이 실시되고 있으며 각 지방자치단체도 정부와 별도로 지원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 두 분 외에도 문명금 할머니, 김옥주 할머니는 한국 정부에게서 받은 생활지원금 등을 전쟁 피해자를 위해 써달라고 하면서 베트남진실위원회에 기부했다. 두 분의 뜻은 한국이 가해자로서 진정한 사죄를 하기 위한 평화박물관 건립운동으로 계승되었다.(인터뷰 「한홍구 선생에게 듣는다」참조)
- 2014년 3월 정대협은 한국 정부에게 보낸 요청문에서, 진상조사 및 규명,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전쟁범죄임을 인정하고,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와 그 유족에 대한 사죄와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 베트남 정부와 국민에게 공식 사죄와 법적 책임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였다. 정대협이 운영하는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에서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범죄에 관한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 2015년 3월 빈딩성 인민위원회로부터 26명의 피해자가 확인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정대협은 현지로 가서 여성들을 만나 조사했다. 이렇게 새로운 지원대상자가 확정되었다.
- 2012년 8월 미군기지 주변에서 성을 수탈당해 온 여성들을 지원하는 두레방 등 일곱 개 단체가 4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결성했다. 집단소송 제기를 중심 과제로 삼았다.12-5 참조.
- 윤미향 대표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우리 스스로가 평화롭지 않으면 안 되기에 우리 사회의 부정의한 제도와 문화를 변화시키는 활동으로 이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미군기지촌여성인권문제 및 성매매 피해 여성 문제와의 연대로 이어졌다. 그런 활동의 배경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미군기지촌 여성인권 문제,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전시 성폭력 문제 등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결국은 같은 뿌리인 가부장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인식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라고 말했다.(2015년 4월 23일 ‘나비기금을 아십니까?’ 집회에서의 발언)
- 주10과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