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여성국제전범법정과 최종 판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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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국제전범 법정이란?


1-8 書映2法廷2000년 12월, 도쿄 〮 구단회관에서 「일본군 성노예제를 재판하는 여성국제전범법정」이, 피해여성 64명을 초청하여 개정되었습니다. 3일간의 법정의 심리에서는 수석 검사의 공소기소장 낭독, 각국의 검사단의 심리, 피해자 본인 〮 비디오에 의한 증언, 증거전시, 재판관 질문이 행해지고, 그 사이사이에 전문가 증인, 당시의 일본군 병사(가네코 야스지 (金子安次) 〮 스즈키 요시오 (鈴木良雄) 씨) 중언이 있었습니다. 초청을 무시한 일본정부의 견해는 아미카ㅡ 큐리(법정조언자)가 진술했습니다.

 

東ティモール법정에는 방대한 증거(서증과 인증)가 제출되었는데, 법정당일에 각국의 피해자가 귀중한 증언(비디오 증언을 포함)을 했습니다. 증언을 한 사람은, 박영심, 하상숙, 김영숙, 문필, 김복동, 안법순(이상, 남북한), 만애화, 원죽림, 양명정(중국), 트마사 사리노그, 맥시마 데라 쿨스, 에스텔 데라 쿨스 바린깃트, 레오노라 헤르난데스 스마왕 외(필리핀), 노만매, 이안 아바이, 고보주(대만), 로자린 소우(말레이시아), 에리 반 델 브로그, 얀 라호팡(네덜란드), 마디엠 스하나(이도네시아), 에스메랄다 보에, 마루타 압 베레 에르메네젤드 베로(동티모르)였습니다.

또 당시의 일본군 병사로서 가네코 야스지 〮 스즈키 요시오씨가 증언했습니다.

 

法廷전문가 증언으로서는, 야마다 아키라(山田朗: 메이지대학 교수)가 「천황의 전쟁책임」을, 하야시 히로후미(林博史: 간토우가쿠인대학교수)가 「일본군의 구조」를,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츄오대학교수)가 「위안부제도」에 관한 증언과 증거전시를 하고, 천황의 전쟁책임과 「위안부」제도에 대한 군 및 천황의 관여에 대한 입증에 공헌했습니다.

 

또 레바 무라제노비치(베오그라드 〮 폭력반대 자립센터)가 트라우마 〮 PTSD를, 프릿츠 칼스호벤(네덜란드 〮 라이덴대학 명예교수)는 「국가책임」을, 후지메 유키(藤目ゆき: 오사카외국어대학 조교수)가 「일본인 『위안부』」에 대해서 증언했습니다.

 

국제법으로 명성 높은 검사단 〮 판사단

수석검사단은, 패트리샤 비사 세라즈(구 유고슬리비아 국제형사법정 법률고문), 우스티니아 도르코볼(호주 프린더스대학 국제법 조교수)이 맡았습니다.

 

판사단(재판관)으로는, 가브리엘 카쿠 맥도날드(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법정 전소장)와 크리스틴 친킨(런던대학 국제법교수), 카르멘 마리아 알히바이(국제여성법률가 연맹 회장), 윌리 무퉁가(케냐 인권위원회 위원장)등 국제법으로 명성이 높은 전문가들이 참여했습니다.

 

게다가 법정 판사단은 범죄가 벌어진 당시의 국제법에 의거하여, 「쇼와천황의 유죄」「일본 정부에게 국가책임」이라는 「인정의 개요」를 제시했습니다.

 



 

최종판결문이 내린 유죄판결 – 「위안부」제도는 「인도에 대한 죄」

법정 증언자 – 피해여성 〮 당시의 병사 〮 전문가 약 1년이 지나 다음해인 12월 4일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내려진 최종판결문에서는 「위안소」제도에 대한 자세한 사실인정과 법적 분석을 통해, 「일본군과 정부 당국은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위안부』제도의 일환으로서 일본군에 대한 성적 예속을 강요 받은 수만 명의 여성과 소녀들에 대하여, 인도에 대한 죄로서의 강간과 성노예제를 실행했다」(666항)라고 하며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성노예제」가 적절한 용어

최종판결문은, 「위안부」제도를 「제도화된 강간, 즉 성노예제」(583항)라고 했습니다. 「성노예제」는 역사적으로 「강제매춘」이라고 했던 범죄명을 새롭게 한, 보다 적절한 용어라고 덧붙였다. 「강제매춘은 성노예제와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를 수반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정도로 악질적인 행위임을 전할 단어는 아니다」라고 하며, 「강제매춘」은 이 제도를 이용하는 측인 남성의 견해이지만, 「성노예제」는 피해자의 입장에서,「피해자가 받는 종속과 고뇌를 보다 적절하게 다루고 있다」(636항)고 하고 있다.

 

또 「일부「위안부」가 일본군에게 돈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성행위를 거부할 자유로운 의지를 빼앗긴 이상 그녀들의 상태는 성노예제였다」(656~660항)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구제를 바라는 권리는 국가간 조약이므로 소멸되지 않는다

게다가 최종판결문은, 피해자 개인에 대한 보상은 「국가간 조약으로 해결완료」라는 근거가 된 센프란시스코 평화조약(1951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판단을 제시했습니다.

 

「어떤 국가가 다른 국가의 인도에 대한 죄의 책임을 파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센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포함된 파기조약은, 연합국도, 이 조약의 조건을 어떤 형태로든 받아들인 모든 피해국도, 인도에 대한 죄……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파기하는 듯한 법적 능력과 권리를 가지지 않았기에 무효입니다.」(1036항)

 

즉, 「인도에 대한 죄」의 피해자가 구제를 요구할 권리는, 국가간 조약으로 소멸할 수는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또 판결은 평화조약을 체결할 때에 젠더 편견이 내재했다고 한 수석검사의 주장의 설득력을 인정하며 다음과 같은 지적을 했습니다.

 

「우리는 여성이 개인 〮 집단으로서 평화조약 체결 시에 남성과 동등한 발언권과 지위를 가지지 않았고, 그 직접적인 결과로서 군성노예제와 강간 문제는 당시에 다루어지지 않고 끝났으며, 평화조약의 교섭과 체결의 배경이 되지 않았던 것에 주목한다. 본 법정은, 국제적 평과 과정에서 이렇게 젠더가 무시된다면 무력분쟁하의 여성에 대한 범죄의 불처벌 문화를 계속 유지시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051항)

 

4-3 画像wam法廷カタログ

일본 정부에 대한 권고

최종 판결문은, 일본정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권고를 했습니다91086 항).
(구 연합국, 유엔 및 가맹국에 대한 권고도 있습니다만, 생략하겠습니다)

1. 「위안부」제도의 설립에 책임과 의무가 있으며, 이 제도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것을 전면적으로 인정할 것.

2. 법적 책임을 지고,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고 보증하고며 완전하고 성실한 사죄를 할 것.

3. 여기에서 선언된 위반의 결과로서, 희생자, 생존자 및 회복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들에게, 정부로서 피해를 구제하고 앞으로의 재발을 방지하는데 적절한 금액의 손해배상을 할 것.

4. 군성노예제에 대하여 철저한 조사를 실시하는 기구를 설립하고, 자료를 공개하고, 역사에 남길 수 있도록 할 것.

5. 생존자들과 협의 하에서, 전시 중, 과도기, 점령기 및 식민지 시대에 범한 젠더에 관한 범죄의 역사적 기록을 작성하는 「진실화해위원회」설립을 검토할 것.

6. 잘 기억하며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기 위해서, 기념관, 박물관, 도서관을 설립하여, 희생자와 생존자들을 지지하고, 명예를 기릴 것.

7. 모든 레벨에서의 교과서에 의미 있게 기술을하고, 또 연구자 및 집필자를 조성하는 등, 공식, 비공식 교육시책을 행할 것. 위반행위와 앞으로의 세대를 교육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범죄의 원인, 범죄를 무시하는 사회, 재발 방지를 위한 수단 등을 조사하도록 노력할 것.

8. 군대와 젠더 불평등과의 관계에 대해서, 또 성의 평등과 지역의 모든 사람들의 존중을 실현하기 위한 필요조건에 대하여 교육을 지원할 것.

9. 귀국을 바라는 생존자를 귀국시킬 것.

10. 정부가 소유하는 「위안소」에 관한 모든 문서와 그 밖의 자료를 공개할 것.

11. 「위안소」설치와 그것을 위한 징집에 관여한 주요 실행행위자를 찾아내어 처벌할 것.

12. 가족과 친척들의 요망이 있으면, 돌아가신 희생자의 유골을 찾아 반환할 것.

 

<인용 〮 참고문헌>

・VAWW-NET ジャパン編・『女性国際戦犯法廷の全記録Ⅰ 日本軍性奴隷制を裁く2000年女性国際戦犯法廷の記録第5巻』緑風出版、2002年

・VAWW-NET ジャパン編『女性国際戦犯法廷の全記録Ⅱ 日本軍性奴隷制を裁く2000年女性国際戦犯法廷の記録第6巻』緑風出版、2002年。

VAWW-NET ジャパン編『Q&A 女性国際戦犯法廷—「慰安婦」制度をどう裁いたか』明石書店、2002年

アクティブ・ミュージアム「女たちの戦争と平和資料館」編『女性国際戦犯法廷のすべて』wam catalogue、2006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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