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일본에게만 식민지 지배 책임을 묻는다?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일본 사람들은 과거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다른 나라는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는데 왜 유독 일본에게만 그 책임을 묻느냐는 의문을 종종 토로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의문은 전
제부터 틀렸습니다. 식민지 지배 책임을 추궁받는 것은 일본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目次

더반회의의 역사적 의의

 우선 세계적인 규모로 과거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이 논의된 사례로, 2001년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열린 인종차별반대 세계회의, 통칭 ‘더반회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1 더반회의는 ‘인종차별철폐조약’(1965년 유엔총회 채택)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엔이 18년 만에 개최한 세 번째 국제회의였습니다. 전 세계 인종차별의 원인, 형태, 예방, 구제 등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행동계획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준비단계 때부터 아프리카각국을 중심으로, 식민지 지배와 노예제2는 그 자체가 인종차별 행위이고 현재의 인종차별의 원천이 되었으며 빈곤과 경제적 격차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과거 식민지 지배와 노예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책임을 져야 할 국가에 대해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준비회의에서는 식민지 지배와 노예제를 행한 국가는 피해를 입은 공동체와 개인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선언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3

더반회의, 2001년 개최

 

그러나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등 EU 회원국인 구 식민지 종주국들은 배상에 대해서도 그리고 배상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사죄에 대해서도 반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최종 채택된 선언문에는 1 노예제와 식민지 지배가 인종차별의 원천이 되었음을 확인하고, 2 노예제는 ‘인도에 대한 죄’임을 밝히기는 했지만, 이에 대한 배상도 명확한 사죄도 없고, 3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는 죄로 규정짓는 문장도 없
이 “유감”이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더반회의는 유엔이 주최한 세계회의에서 국가의 범위를 넘어 식민지 지배와 노예제의 책임을 공적으로 논의하고 추궁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 종주국이 식민지 지배 책임을 진 사례

 식민지 지배와 노예제에 대한 문제가 더반회의 때 갑자기 제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냉전구조가 붕괴되는 1990년대에 이르러 이러한 움직임이 활발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1993년 나이지리아 아부자에서 배상에 관한 범(汎)아프리카 회의가 열렸고 노예제, 식민지 지배 등으로 인한 아프리카 및 아프리카계 주민들의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다양한 문제 제기가 잇달았는데 이 가운데 몇 가지 중요한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영국·케냐의‘마우마우’재판

 우선 직접 피해 당사자가 생존해 있고 구 종주국이 개별 배상을 인정한 사례부터 소개하겠습니다. 1950년대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키쿠유인들을 중심으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무력투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영국은 ‘마우마우’라는 지하조직이 있다고 간주하여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투쟁을 진압하면서 주민들을 강제수용하고 고문을 자행하는 등 가혹한 탄압을 계속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영국 BBC의 관련 다큐멘터리와 새로운 역사 연구가 진상규명운동을 진척시키자4 2009년에 마우마우 활동가였던 다섯 명이 영국 정부를 정식으로 제소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처음에는 재판의 당사자성도 자료도 없다면서 부정했지만 2011년에 런던에 있는 보관 창고에서 대량의 관련 자료가 발견되면서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2012년 고등법원은 영국 정부에게 원고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2013년 영국
정부는 이 판결을 받아들여 5천 명이 넘는 고문 피해자 개개인에게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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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인도네시아의 라와그데 재판

 인도네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점령하기 전에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습니다. 일본이 패전하자 구 종주국인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무력을 동원하여 다시 한 번 식민지화하려 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이러한 네덜란드에 맞서 격렬한 독립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1947년, 서(西)자바의 라와그데 마을에서 네덜란드군이 주민 남자들을 학살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6 인도네시아 독립선언 50주년이 되는 2005년, 네덜란드 외무장관이 ‘도의적’으로 사죄한 것이 계기가 되어 2009년에 유일한 생존자 남성과 희생자 유가족들이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11년 헤이그 지방법원이 시효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리자 네덜란드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죄를 표명하고 유일한 생존자와 남겨진 배우자에 대한 배상금 지불을 결정했습니다.

 이처럼 피해의 직접 당사자가 생존해 있고 비인도적 행위에 관한 충분한 증거가 있으며, 정치가, NGO, 법률가, 역사연구자 등이 당사자들을 지원하고 여론을 형성, 확대해 나가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면 구
종주국의 정부가 법적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한 선례가 이미 축적되어있습니다.

오늘날의 과제

 그러나 피해 당사자가 생존해 있지 않는 등 사법적 해결을 위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 독일은 당시 식민지였던 서남아프리카(현 나미비아)의 헤레로 등 민족 집단에 대해 집단학살과 강제수용을 비롯한 잔학행위를 자행했습니다. 2001년 헤레로인들이 미국 법원에서 독일의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재판을 제기했지만, 2007년까지 모두 기각되었습니다.7 그리고 사상 최초의 흑인 공화국으로 1804년에 독립한 아이티는 그때까지의 종주국이었던 프랑스에게 60년 이상에 걸쳐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었습니다. 2002~2004년, 아리스티드 당시 아이티 대통령은 프랑스에게 과거 지불했던 배상금에 대해 반환과 보상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8 이외에도 노예제의 피해자인 흑인들의 사죄와 배상 요구, 선주민족의 권리회복 요구 등과 관련한 운동 중에도 위 사례와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경우에서 법적 책임과 배상이 인정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위 사례와 같은 식민지 지배 책임에 관련한 문제들은 사회적으로 크게 화제가 되었고 그 결과, 탈식민지화가 현재적 과제라는 점, 현행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적 판단 등의 시도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측면은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전시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가 일본 정부와 기업을 대상으로 제기한 소송을 포함한 일련의 운동은 앞서 소개한 사례들과 시대적으로도 배경적으로도 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법적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990년대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밝힌 이후 이들의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졌고,
앞서 소개한 타 지역에서 벌어진 역사적 책임을 추궁하는 운동에 자극을 준 부분도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본의 문제 해결은 세계사적 문제 해결과 연동되어있습니다. 바로 이 관점에서 우리들은 식민지 지배가 남긴 짐을 직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1. 정식 명칭은 ‘인종주의, 인종차별, 외국인 배척 및 관련하는 불관용에 반대하는 세계회의’. 이 회의에 대해서는『反人種主義·差別撤廃世界会議と日本』(月刊『部落解放』, 2002년 5월호 증간)및 참고문헌으로 소개한 두 권의 책을 참조하기 바란다.
  2. 보다 정확히 설명하면, 사람을 노예로 매매하는 노예 거래와 사람을 소유물로 취급하는 법적, 경제적 시스템으로서의 노예제는 구별되지만, 여기서는 이 둘을 합쳐 ‘노예제’로 칭하겠다.
  3. 이타가키 류타, 「탈냉전과 식민지배 책임의 추급」(나카노 도시오·김부자 편저, 『역사와 책임』, 선인, 2008)을 참조하기 바란다.
  4. 2002년 BBC가 <케냐-화이트 테러>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그리고 2005년에는 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도 참여했던 엘킨스(C. Elkins)가 『영국판 강제수용소(Britain’s Gulag)(』 미국판 제목은 Imperial Reckon-ing)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5. 영국의 가디언(The Guardian)은 이 재판에 대한 모든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는데 특히 2013년 6월 6, 7일 기사에는 엘킨스가 쓴 장문의 코멘트가 같이 수록되어 있어 큰 도움이 된다.
  6. 라와그데 사건과 재판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吉田信,「オランダにおける植民地責任の動向」,『( 国際社会研究』2, 2013.)을 참조하기 바란다.
  7. 永原陽子,「ナミビアの植民地戦争と「植民地責任」」,『「植民地責任」論』, 青木書店, 2009.
  8. 浜忠雄,「ハイチによる「返還と補償」の要求」,『「植民地責任」論』, 青木書店,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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