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합의’의 쟁점의 하나는, 한국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정식명칭 ‘평화비’, 이하 〈소녀상〉의 ‘철거・이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녀상〉은, 한일 ‘합의’ 발표 후에, 소녀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캐나다, 중국・홍콩・필리핀, 호주, 독일 등에 잇달아 세워지고 있습니다(이 책 뒤표지 참조1 왜일까요?
한일 ‘합의’와 〈소녀상〉~「표현의 자유」의 침해
〈소녀상〉에 관한 한일 ‘합의’의 요점은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전문 참조)
(1) 일본 정부가 ‘주한국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 (2) 그 이유는 일본 정부에 따르면 ‘공관의 안녕・질서 유지의 관점’에 있다는 점, 그 때문에 (3) 한국 정부가 ‘관련 단체와의 협의를 실시하는 등’에 의해 ‘적절하게 해결’되도록 ‘노력’할 것, 입니다.
먼저, (3)부터 봅시다. 주의가 필요한 것은 한국 정부에 의한 ‘적절한 해결’에의 ‘노력’을 당부했을 뿐, ‘철거・이전’을 약속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16년 4월 말, ‘합의’를 추진한 박근혜 대통령(당시) 조차, ‘소녀상의 철거는 합의에서 언급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2
왜냐하면, 〈소녀상〉을 세운 것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라는 민간단체이기 때문입니다.3 한국 정부라고 해도, 민간단체의 창조물을 멋대로 철거는 할 수 없습니다.4 ‘표현의 자유’에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에서 한일 ‘합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려고 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공관의 안녕・질서’를 어지럽히다? 〜일본 정부가 철거・이전을 요구하는 이유
다음으로, (2) ‘공공의 안녕・질서의 유지’를 봅시다. 2016년 말 부산 시민이 주부산일본영사관의 뒤편 공공 도로에 〈소녀상〉을 세운 후, 일본 정부는 대사나 총영사를 귀국시키는 대항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 때 일본 정부의 견해는, 국제법이라는 공공의 불가침과의 관계6씨에 의하면, 공관의 안녕・위엄이 무엇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또한 아베 씨는 각국의 판례가 보여주는 것이 ‘사절단/영사 기관의 임무 수행이 방해받고 있는지, 공관을 향한 행동이 공격적이고 모멸적인 것인지, 나아가 표현・집회 등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지 등의 사항을 충분히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라고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소녀상〉은 대사관 앞에 계속 앉아있을 뿐이며, 공관의 임무를 방해하고 있지 않고 행동으로 공격・모멸하고 있지 않습니다. 〈소녀상〉이라는 ‘표현의 자유’, 수요 집회 등의 ‘집회의 자유’도 보장되어야 합니다.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시의 시립 공원 안에 ‘위안부’상 설치를 계기로, 합헌성을 둘러싼 재판이 벌어졌습니다.7 재판에서는 피해자의 ‘기억’을 보존하고, 같은 인권침해가 반복되지 않을 희망을 표명하는 기념비의 설치는 지방 자치단체의 전통적인 역할이라고 명언하고 있습니다. 국제 인도법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념비의 설치는 인권 침해의 피해 회복 조치의 하나로, 시민이 과거를 마주보며 과거에 대해 알 권리를 실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8
공관의 안녕・위엄의 침해인지 아닌 지에의 판단에는 기념비의 역할인 ‘기억할 권리’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소녀상〉(‘위안부’ 상)은 왜 해외에도 계속 확산되고 있을까?
또한 일본 정부는 ‘합의’에 얽매이지 않는 여러 나라에 ‘위안부’ 상이나 비가 세워지자 공관 앞이 아니더라도 설치를 저지하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 움직임은 미국에서 현저합니다. 최근에는 일본 총영사가 전면에 나서서 공공연하게 ‘위안부’ 상을 비난하게 되었습니다. 2017년 6월, 브룩헤이븐시의 공원에 ‘위안부’ 상 설치가 가까워지자 주애틀란타 일본총영사가 인터뷰에서 ‘위안부’ 상을 ‘일본인에의 증오와 반감의 상징’, ‘일본군이 여성을 성노예로 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여성들은 돈을 받은 매춘부’등 발언을 한 것이 보도되어 국제적으로 비판 받았습니다. 총영사의 ‘매춘부’ 발언은 나중에 공개된 녹음에서는 ‘가족을 돕기 위해 ‘이 일’을 하기로 정한 소녀들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 일’이 매춘을 가리키는 것은 분명합니다.9이러한 총영사의 언동이야말로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을 강조하여 말한 한일 ‘합의’를 스스로가 배신하고, 일본 정부의 사죄・반성에의 의심을 국제사회에 확산키시고 있습니다.
더욱이 같은 해 9월, 샌프란시스코시의 공원에 조선인・중국인・필리핀인 ‘위안부’ 소녀 3인이 손을 잡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나선 김학순 씨가 지켜보는 구도의 ‘위안부’ 상이 설치되었습니다(앞 페이지 사진). 설치를 둘러싸고 열린 시의 공청회에서는 추진파와 반대파가 전면 충돌하였습니다. 그 후 만장일치로 설치가 결정되었습니다만, 그 원인은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반대파의 언동에 있었습니다.10 이에 대해 같은 해 11월에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우리나라의 입장과 맞지 않다’고 반발, 샌프란시스코시를 포함한 미국에서의 ‘위안부’ 비나 상의 설치 저지에 힘쓰겠다고 말하였고, 오사카 시장도 샌프란시스코 시와의 자매 도시 관계의 해소를 표명하였습니다.11 결국 일본 정부에게 있어서 (2) ‘공관의 안녕’은 핑계이고, ‘위안부’ 상이 여러 외국의 공원 등의 공유지에 설치되는 것으로 ‘위안부’ 문제가 글로벌한 ‘공적인 기억’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시의 산책길에, 2017년 12월 8일, 일본 점령하의 필리핀 여성의 상을 설치하였습니다12 스가 관방장관은 ‘일본 정부의 입장과 맞지 않다’고 필리핀 정부에 제기하였고, 2018년 1월에 필리핀을 방문한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총무상이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유감’을 전하였습니다. 같은 해 4월 27일, 필리핀 여성의 상은 철거되었습니다. 필리핀 정부는 현지의 일본 대사관에 철거를 사전 통보하였으므로,13 일본 정부를 ‘배려’했음이 틀림없습니다. 바로 망각의 강제입니다.
필리핀 전 국토에는 일본인 전몰자(병사)의 위령비가 400기 이상14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사람들이 일본군에 의한 자국의 피해를 기억하는 ‘위안부’ 상을 자국 내에 세우는 것에 일본 정부 수뇌가 ‘유감’, ‘일본 정부의 입장과 맞지 않다’고 압력을 가하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것이 아닐까요. 일본에 있는 원폭이나 공습, 오키나와전 등의 전쟁 희생자를 위령하는 상이나 비에 대해 미국 정부 수뇌가 같은 일을 한다면, 일본 정부는 받아들일까요?
한국이나 아시아, 세계 각지에서 〈소녀상〉이나 ‘위안부’ 상・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추진력은, 한일 ‘합의’ 후에 한층 더 불거진 일본 정부의 역사 수정주의적인 자세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강경과 외교부 장관이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관해 ‘일본이 이전을 요구할수록 상은 더 만들어진다’고 말한 것15은 이를 짐작케 합니다. 이제 〈소녀상〉은 전시 성폭력의 재발 방지를 위한 글로벌한 ‘기억’의 상징임과 동시에, 일본 정부의 ‘기억 말살’적 자세에 대한 트랜스내셔널한 ‘저항’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 오카모토 유카・김부자, 『증보 개정판 〈평화의 소녀상〉은 왜 계속 앉아있는가』(세오리쇼보, 2016년)는 사진이 들어있고 내용이 상세하다. 다베이 교카田部井杏佳, 「한국에서 세계로 퍼져가는 ‘평화의 소녀상’――한국의 운동과 캐나다 토론토에서의 노력을 중심으로」, 『계간전쟁책임연구』 제89호, 2017년 동계호, 등도 참조.
- 『한겨례』(일본판) 2016년 4월 27일.
- 이 책 141~145 페이지 칼럼 ‘〈소녀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및 오카모토・김부자 앞의 책을 참조.
- 2017년 9월 서울시 종로구는 〈소녀상〉을 구 제1호 ‘공공조형물’에 지정하였고, 이전・철거에는 구 위원회의 심의가 필요하게 되어, 법적 근거가 부여되었다.
-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2조 및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1조.[/efb_note]에서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소녀상〉의 설치에 의해 공관의 안녕과 위엄이 침해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국제법 학자인 아베 고키(阿部浩己)5아베 고키, 「평화비의 설치와 국제법」, 『wam 소식』vol.36, 2017년 8월.
- 2014년 7월에 글렌데일시의 시립 공원에 ‘위안부’ 상・비가 설치되었으나, 보수계 재미일본인이 비의 철거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 패소하였다. 이러한 역사 수정주의에 대하여 아시아계 시민・반전단체・여성단체의 연계에 의한 항의 운동이 일어났다. 고야마 에미小山エミ, 「미국에서 거세지는 보수계 재미 일본인・일본 정부에 의한 역사수정주의」, 나카노 도시오 외,『’위안부’ 문제와 미래에의 책임』, 오츠키쇼텐, 2017년을 참조.
- 아베 고키, 앞의 글.
- 고야마 에미, 앞의 글.
- 설치를 추진한 ‘‘위안부’ 정의연맹(CWJC)’은 중국계, 한국계, 필리핀계, 일본계, 재일 코리안 등 여러 사람에 의한 시민 단체다. 시의 공청회에서 피해 여성인 이용수 씨가 증언하자, 보수계 일본인이 ‘증언은 신용할 수 없다’고 비난, 이에 복수의 시의원이 거세게 반발하며 ‘창피한 줄 알아라’고 거듭 말했다. 그 결과, 만장일치로 설치가 정해졌다. 일본 총영사관이 반대 운동을 촉진하였다고 한다. 고야마 에미의 앞의 글 및 김미호(‘위안부’ 정의연맹 공동 발기인・대표) ‘샌프란시스코・‘위안부’ 메모리얼 건립 운동의 프로세스의 전망’ (2017년 12월, Fight for Justice 사이트 게재).
- 야마구치 도모미山口智美, 「샌프란시스코시 ‘위안부’ 상 설치를 둘러싼 ‘역사전’」, 『세카이』, 2018년 2월호.
- 비문에 ‘일본 점령하인 1942~45년에 학대를 받은 필리핀인 여성 희생자의 기억’ (타갈로그어), 좌대 뒤에 ‘필리핀인 위안부의 상’ (영어)로 새겨져 있다. 필리핀 국가 역사 위원회가 현지의 민간단체 등의 지원을 얻어 세웠다고 한다.
- 『아사히신문』2018년 4월 28일. 필리핀인이나 일본의 시민 단체가 저항하는 목소리를 냈다.
- 『일간 마닐라신문』2015년 12월 4일호.
- 『중앙일보』(일본어판) 2017년 7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