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2007년 미국 하원 등 대일 「위안부」사죄 요구 결의

일본계 혼다의원이 제출한 결의안

4-4画像1 HONDA2007년 1월 31일, 일본 정부에게 「위안부」문제에 대한 책임 인정을 요구하는 결의안 (United States House of Representatives proposed House Resolution 121, H.Res.121) 이, 일본계 마이크 혼다의원을 포함한 7 명의 의원(민주당 4명 〮 공화당 3 명)에 의해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에 제출되었습니다.

 

2월 15일에 열린 공청회에서는 세 명의 「위안부」 피해자가 증언했습니다.  미의회가 이 문제로 피해자의 살아있는 증언을 듣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미국내에서도 결의안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높아졌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3GkS3ViToGA
http://www.youtube.com/watch?v=D6oTTgnaRII

 

그 후 계속해서 찬동하는 의원이 늘어가, 공동제안자는 민주당 〮 공화당에서 167명에 이르고,
7월 30일에 하원 본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 자료고에 영어판 〮 번역)되었습니다.  같은 결의안은 01년부터 4회 제출되어 모두 폐기되었습니다.

 

여기에 이어서 같은 해 11월에는 네덜란드 하원 본의회, 캐나다 하원, 12월에는 EU의회 본의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위안부」사죄요구 결의 채택을 하자고 하며 확산되었습니다(네덜란드는 피해당사국입니다). 또 2008년에는 피해국인 한국국회, 대만 입법원에서도 같은 결의가 일어났습니다.

 

왜 2007년인가?

그러면 왜 2007년에 미국, 네덜란드, 캐나다, EU로 결의가 확산되었을까요?  미국 하원 본의회 결의를 살펴봅시다.

 

첫째, 전년인 2006년 4월부터 사용된 일본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본문에서, 「위안부」에 대한 기술이 일제히 지워지고 일본 정치가가 「위안부」사실관계를 부정하는 발언을 반복했습니다.

 

그 때까지 「고노 담화」「무라야마 담화」에 기초하여, 1997년 중학교 역사 교과서 7사 모두에 「위안부」에 관한 기술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에 반발하는 세력이 반격을 도모하여 2002년 교과서에서는 8사 중 3사만이 기술하게 되었고, 2006년도 교과서에서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이에 관련하여 2004년에 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成彬) 문부과학 장관(당시)이 「최근, 이른바 종군 「위안부」라든가 강제연행과 같은 말이 줄어든 것은 정말 잘됐다」고 발언했습니다.

 

이 일에 아베 씨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베 씨는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에 「위안부」존재에 부정적인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몇몇 의원의 모임」(1997년 결성)의 사무국장으로서, 일본군의 관여를 정부가 인정한 「고노담화」91993년)의 수정 〮 철회를 요구하는 활동을 해 왔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하여, 미국 하원 결의에서는

 

「일본 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새로운 교과서에는 「위안부」의 비극과 그 밖의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일본의 전쟁범죄를 경시하려고 하는 것이 있으며,」「일본의 공인이나 개인이 최근 들어 「위안부」의 노고에 대하여 일본 정부의 진지한 사과와 반성을 표명한 1993년의 고노 요헤이 내각 관방장관의 「위안부」에 관한 성명(주: 고노 담화를 말함)을, 약화시키거나 철회하려는 욕구를 표명하고 있으며,」

 

라고 분명하게 염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결의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007년 4월 27일의 미일 정상회담에서, 아베수상은 당시 「위안부」분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고, 부시대통령은 「사죄」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2013년 3월에 국회에서 아베수상은 이 회담에서 「위안부」문제는 나오지 않았다고 부정했지만, 같은 해 5월에 츠지모토 키요미의원에게 모순을 추궁당하자 번복하며 이상의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安倍、ブッシュ_s

2007年4月27日の日米首脳会談で、安倍首相は元「慰安婦」の方々に「申し訳ない」と述べ、ブッシュ大統領は「謝罪」を受け入れた。ところが、2013年3月に国会で安倍首相はこの会談で「慰安婦」問題は出ていないと否定したが、同年5月に辻元清美議員に矛盾を追及されると、一転して以上の事実関係を認めた。

둘째, 2006년 9월에 수상이 된 아베 신조 씨는 2007년 3월에는 직접 「위안부」에 대한 강제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더구나 그 발언이 미국의 여론에서 비판 받자, 미일 정상회담에서 「사죄」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등 일관되지 못하게 갈팡질팡했습니다.

 

아베수상은, 내각을 조직한 직후에는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06년 10월 3일)고 표명했지만, 방미를 앞둔 3월에 「고노 담화」와 관련하여 「정의된 강제성을 뒷받침할만한 것이 없었다」(07년 3월 1일)고 말하고, 나아가 정부 답변서에서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과 관헌에 의한 소위 강제연행을 직접 나타내는 듯한 기술도 발견되지 않았다」(3월 16일, 2007년 각의 결정)고 하며 강제성을 부인했습니다. 3월 5일에는, 미하원 결의안에 대하여 「우리가 사죄한다는 말하는 일은 없다」고까지 표명했습니다.

 

이들 발언이 미국 내에서 보도되어 큰 반발이 일자, 여기에 당황한 수상은 뉴스 위크 워싱턴 포스트 기자의 질문에 「(종군 위안부가 되셨던 분들에게)인간으로서 나는 동정을 표명하고, 또 일본 수상으로서 이 사람들에게 사죄할 필요가 있습니다」고 대답하며, 궤도 수정을 꾀했습니다(4월 21일). 그러나 기자에게 「이제까지의 발언과 다르다. 당시는 (강제성의)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는 지적을 받자, 「그런 말을 한 것은 내가 처음은 아니다」고 하며 답변을 회피했습니다. 그 직후 미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수상은 부시 대통령에게 (당시「위안부」였던 분들에 대한) 「사죄」의 말을 입에 올렸습니다.

 

그 후 6월 14일에는, 일본의 국회의원 등이 워싱턴 포스트에 『The Facts』라는 제목으로 광고를 내서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며 「위안부」징집에 일본 정부도 군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피해국인 네덜란드 발케넨더 수상은 「너무나도 부적절하다」며 불쾌감을 표명했습니다(쿄도통신 6월 29일자)

 

이 과정에서, 결의를 찬동하는 미국 국회의원들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분석한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 는 「3월과 방미 했을 때의 수상의 언행이 결의안에 대한 찬동 의원 증가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국제사회는 무엇을 왜 문제 삼고 있는가

미국 하원 결의 등의 각국 결의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에 대하여. 국제사회가 무엇을 왜 문제 삼고 있는지를 내놓았습니다. 그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각국의 결의안은 모두 아래와 같이 「위안부」문제의 핵심은 일본군에 의한 위안소에서의 성행위의 강제, 요컨대 성노예였다고 인식했습니다.

「일본군에 대한 성적 예속」「집단 강간, 강제 중절, 굴종, 그리고 신체절제, 죽음, 결과적 자살에 이른 성폭력을 포함한,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 사건 중 하나」「강제적인 성노예제」(미국 결의)
「일본이, …… 운영한 강제 성노예제도」(네덜란드 결의)
「일본제국군을 위한 「위안부」의 성노예화와 인신매매」(캐나다 결의)
「제국군의 성노예」「윤간, 강제낙태, 굴욕 및 성폭력을 포함하여, 장애, 죽음과 자살을 불러온 20세기 인신매매의 가장 큰 케이스 중 하나」「황군에 의해 젊은 여성을 강제적으로 성노예 상태에 둔 행위」(EU결의)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본 정부 수뇌와 정치가처럼 「위안부」의 강제연행 여부를 문제로 한 결의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2007년 당시 미국에 있던 도고 가즈히코(東郷和彦) 전 외무관료는 「강제연행」에 관한 일본의 논의는 이 문제의 본질에 의미가 없으며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언명하고 있습니다.

 

「위안부」문제의 핵심은, 일본군의 관리 〮 통제 아래에서 외출 〮 거부 〮 폐업의 자유(인권)를 빼앗긴 상태로, 위안소에서의 성노예였던 사실, 비참한 상태에 있었던 사실에 있기 때문에, 위안소로 가기 전의 연행 상태 – 예를 들면「위안부」가 강제연행 되었는지 어떤지 –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사실은 강제연행 사례가 많았지만). 따라서 「위안부」가 되기 전에 성매매을 했었는지의 여부와 보수를 받았는지의 여부도(실제는 보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지만), 성매매 여부도 문제의 핵심과는 관계가 없습니다(「강제매춘」에 대한 견해는 ⇒ 여성국제전범 법정으로 GO).

 

「위안부」가 된 여성들은 일본의 전쟁 수행의 도구로 쓰여졌으며 인권을 빼앗겼습니다. 문제는 일본 사회, 일본 정치가의 「여성 인권」에 대한 의식입니다.

 

둘째, 결의는 일본 정부 고관 등의 「위안부」부정 발언과 교과서에서의 「위안부」기술 말살에 우려를 표명하고, 「강제적인 성노예제」를 「애매하지 않도록 명확한 형태로 정식으로 인정하고, 사죄하고, 역사적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미국 결의)고 명확하게 사실을 인정하고, 「현재 및 미래 세대에게」역사 교육을 통해 전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교과서에 대한 기술과, 「위안부」존재를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에게 「명확하고 공적으로 반발해야 한다」(미국 결의)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른 각국의 결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특히 EU 결의는, 일본 정부에 대하여 사죄만이 아니라 배상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배상을 위한 효과적인 행정기구」, 국회에 대해서는 「배상을 획득하기 위한 법적 조치」를 설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편 국민기금에 대해서는, 「민간인의 노력과 정열」(미국 결의)로서 인정하지만, 「피해자들이 바라고 있는 법적인 인지와 공적인 국제법에 의한 배상을 충족하는 것은 아니다」(EU결의)고 하며 일본의 정식적인 사죄 〮 보상으로는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국제사회가 염려하고 있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성노예)제도라는 역사사실을 공공연하게 부정하는 현재의 일본이 과연「민주주의, 법의 지배, 인권의 존중 등의 가치」(EU결의)를 공유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인용 〮 참고문헌>

荒井信一「米議会下院と『慰安婦』問題」『歴史と責任』青弓社、2008年
東郷和彦「『普遍的人権』問題としての慰安婦制度」『世界』2012年12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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